진료실에서 이런 고민을 자주 만납니다.
"약을 여러 가지 먹고 있는데, 이를 빼도 괜찮을까요."
연세가 있으시고 복용하는 약이 많은 분일수록 발치를 미루게 되십니다. 그렇게 아픈 치아를 몇 달씩 안고 지내시는 동안, 처음보다 치료가 복잡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먼저 말씀드리면, 약을 드신다고 해서 이를 뺄 수 없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은 무엇을 얼마나 드시는지 확인하고, 준비를 갖추고, 뺀 뒤를 관리하면 됩니다. 어려운 것은 발치 자체가 아니라 그 준비를 생략했을 때입니다.
※ 이 글은 일반적인 판단 기준을 정리한 것으로, 실제 가능 여부는 복용 약의 종류와 기간, 전신 상태에 따라 다릅니다. 약의 조절은 반드시 처방하신 의사와 상의해 결정해야 합니다.

가장 먼저 — 약을 스스로 끊지 마세요
이 글에서 한 가지만 기억하신다면 이것입니다.
발치를 앞두고 "피 멎는 약이니 며칠 끊고 가야겠다"고 혼자 판단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위험한 선택입니다. 그 약은 혈전을 막기 위해 드시는 약이고, 임의로 중단하면 뇌경색이나 심근경색 같은 사고 위험이 올라갑니다. 치과 출혈보다 훨씬 큰 문제입니다.
실제로 최근에는 항혈전제를 유지한 채 발치를 진행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피가 조금 더 날 수 있지만, 그 출혈은 치과에서 막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약을 끊어 생기는 사고는 치과에서 되돌릴 수 없습니다.
약을 조절해야 하는 경우가 있더라도, 그 판단은 처방하신 의사와 치과가 상의해서 내립니다. 환자분이 혼자 정하실 일이 아닙니다.
피가 잘 안 멎는 약을 드시는 경우
아스피린, 항혈소판제, 와파린, 최근의 항응고제까지 종류가 여러 가지입니다. 심장 스텐트를 하셨거나 부정맥, 뇌혈관 질환으로 드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치과에서 확인하는 것은 이렇습니다. 어떤 약을 몇 가지 드시는지, 두 가지 이상을 함께 드시는지, 그리고 필요하다면 혈액 검사로 응고 상태를 확인합니다.
발치 자체도 달라집니다. 잇몸을 최소한으로 다루고, 뺀 자리에 지혈재를 넣고 꿰매고, 충분히 물고 계시도록 한 뒤 지혈을 확인하고 보내드립니다. 집에서 지켜야 할 주의사항은 그날 따로 안내드립니다.
골다공증 약을 드시는 경우
이쪽은 결이 다릅니다. 출혈이 아니라 뼈가 아무는 과정에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골다공증 치료제 중 일부는 턱뼈의 치유를 더디게 할 수 있고, 드물게 발치한 자리가 잘 낫지 않는 문제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저는 이 경우 더 꼼꼼히 여쭤봅니다. 어떤 약인지, 먹는 약인지 주사인지, 얼마나 오래 드셨는지, 마지막 투여가 언제인지.
확인 후에는 처방하신 의사와 상의해 시기를 조율하기도 하고, 수술 범위를 줄이거나 회복을 돕는 처치를 더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뺀 뒤 아무는 과정을 평소보다 오래 지켜봅니다.
여기서도 원칙은 같습니다. 환자분이 임의로 약을 중단하지 않으셔야 하고, 반대로 약을 드신다는 이유만으로 치료를 무기한 미루는 것도 답이 아닙니다. 염증이 있는 치아를 그대로 두는 것 자체가 턱뼈에 부담이 되기 때문입니다.
당뇨나 고혈압이 있으신 경우
당뇨는 혈당이 잘 조절되고 있는지가 핵심입니다. 조절이 되는 상태라면 일반적인 발치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조절이 안 되는 상태에서는 상처가 더디게 아물고 감염 위험이 올라가, 혈당을 먼저 정돈한 뒤 진행하는 편이 안전합니다.
고혈압은 당일 혈압을 재고 시작합니다. 긴장으로 혈압이 오르는 경우가 많아, 가능하면 오전에 짧게 끝내는 쪽으로 잡습니다. 드시는 혈압약은 평소대로 드시고 오시면 됩니다.
두 경우 모두 아침 식사를 거르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공복으로 오셔서 저혈당이 오는 일이 생각보다 자주 있습니다. 다만 당뇨약이나 인슐린은 식사량에 따라 조절이 필요할 수 있으니, 당일 복용 여부는 미리 확인하고 오시는 편이 안전합니다.
그래도 상급 의료기관이 맞는 경우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개원가에서 감당하지 않는 편이 나은 경우도 있습니다.
항암 치료 중이거나 머리·목 부위에 방사선 치료를 받으신 경우, 투석 중이신 경우, 심장 수술 직후이거나 상태가 불안정한 경우, 그리고 여러 질환이 겹쳐 입원 관리가 필요한 경우입니다. 이때는 제가 붙잡고 있는 것이 환자분께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어디서 할지를 정하는 것까지가 진료라고 생각합니다. 그 판단을 위해서도 일단 한 번은 확인을 받아보셔야 합니다.
구리에서 약을 드시는 채로 발치 상담을 오신다면
세 가지만 챙겨 오시면 상담이 훨씬 빨라집니다.
드시는 약의 목록. 약 봉투나 처방전, 약국에서 받은 복약 안내문이면 충분합니다. 이름을 외워 오시려다 빠뜨리는 경우가 많아, 사진으로 찍어 오셔도 좋습니다.
최근 검사 결과. 혈액 검사나 혈당 수치가 있으면 판단이 빨라집니다.
다니시는 병원과 진료과. 처방하신 선생님과 상의가 필요할 때 연락이 수월합니다.
구리와 다산, 남양주에서 오시는 분들 중 연세가 있으신 분이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상담에서 치아보다 몸 상태를 먼저 여쭤봅니다. 순서가 그래야 안전하기 때문입니다.
약을 드신다는 이유로 치료를 미루는 동안 치아는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염증이 번지면 그때는 선택지가 줄어듭니다.
저는 한양대학교 구강악안면외과에서 인턴과 레지던트 과정을 거치며 전신 질환을 가진 환자분의 수술을 함께 다뤄왔습니다. 그 경험에서 배운 것은 확인해 보면 진행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 그리고 그렇지 않은 경우를 가려내는 일도 똑같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약 때문에 발치를 망설이고 계셨다면, 약 봉투를 들고 한 번 상담을 받아보시길 권합니다.
매복 사랑니처럼 수술 범위가 큰 발치는 따로 정리해 둔 글이 있습니다. (관련 칼럼 → 사랑니가 신경과 가깝다고 합니다)
